출판사를 차리기로 했다.

처음 전기장판 출판사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다른 작가분들의 책을 출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출판사를 차린 이유는, 독립출판도서 “까미노 여행 스케치”를 ― 이 때는 책을 이레이다 화가의 개인전이라는 마인드로 접근했다 ― 출판하기 위해서였다. “까미노 여행 스케치”의 글과 그림, 디자인은 모두 이레이다 작가가 직접 했고, 인쇄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책을 인쇄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다른 출판사에 맡기는 것 ― 다른 출판사에 맡겨도, 자비출판의 경우 돈은 비슷하게 들어가고 판매는 기대하기 어렵다 ― 보다, 직접 인쇄소를 찾아가서 인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인쇄부수에 따른 비용 차이가 크지 않아서 1,000부 이상을 인쇄하기로 했다. 1,000부가 넘어가면 독립서점을 통한 판매로는 전부 판매하기가 어려워보였고, 대형 유통사(교보문고, 영풍문고 등)에 입점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대형 유통사에 입점하려면 ISBN이 필수였고, 인쇄비용과 ISBN 등을 고려하여 ― 대형 유통사 입점과 인쇄부수를 고려했을 때 배본사가 필수적인데, 그 당시에는 배본사에 들어가는 돈이 작아보였다 ― 출판사를 직접 차리기로 했다.

출판사 이름은 “전기장판”이다.

출판사 상호명에는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다.

출판사를 차리기 위해서는 이름이 있어야한다. 개인사업자는 ― 출판사를 개인사업자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 같은 지역에 동일한 상호명을 쓸 수 없으므로, 아무 이름이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출판사와 겹치지 않는 상호명을 쓰고 싶었다. 다행히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출판사/인쇄사 검색시스템)가 있어서, 같은 상호명의 출판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쉬웠다.

전기장판에 누워서 고민하다.

배우자가 출판사를 직접 차리기로 결정한 이후, ― 정확히는 출판사를 차리기로 고민하다가, 출판사를 차리기로 결정한 직후 ― 출판사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배우자와 함께 전기장판에 누워서 책(핸드폰? 혹은 탭?)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혹은 배우자는 출판사 설립과 관련해서 검색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냥 누워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이때도, 전기장판 온도를 몇 도로 설정할 것인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 후였던 것 같다. 필자는 전기장판을 워낙 좋아하고, 가장 뜨겁게 지지고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배우자는 전기장판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온도를 조금만 올려도 더워했다.

“전기장판 어때?”

필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떠오르는 단어들을 얘기하다가, 전기장판을 얘기했다. 너무 대충 얘기하는거 아니냐고, 그렇게 아무렇게나 지어도 되는거냐고 핀잔을 들었던 것 같다. 필자는 꿋꿋하게 “전기장판”이라는 이름의 좋은점에 대해서 얘기했다. 필자가 얼마나 전기장판을 좋아하는지, 전기장판이 얼마나 어감이 좋은지, 전기장판이 얼마나 우리에게 친숙한지, 그리고 아무도 출판사 이름으로 전기장판을 쓰지는 않아서 기억이 남을 거라는 등 ― 대부분은 그냥 필자가 전기장판을 좋아하고, 원래 이런 이름은 좋아하는 사물을 기반으로 지어야 한다는 등 궤변이었던 것 같다 ―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했던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결국 출판사 이름은 “전기장판”으로 정해졌다. 아마도 필사적인 설득이 통한 것 같다.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성격과 “전기장판”의 어감, 전기장판이 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 등 나중에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이름이었다. 덕분에 아직도 ’전기장판 출판사입니다.’라고 얘기하면, 몇 번씩 다시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출판사 이름은 ― 배우자의 본명이 “이레이다”로 특이하다는 것도 포함해서 ― 절대 까먹지 않았다.

전기장판 출판사를 차린 후에는…

전기장판 출판사의 슬로건 “전기장판 위에서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듭니다.”는 나중에 생겨난 문구다. 처음 “까미노 여행 스케치”를 위해 만들어진 출판사에 몇 종의 다른 책이 추가되고, 대부분의 유통사와 거래하게 되면서, 상호에 그럴듯한 설명이 필요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기장판으로 출판사 이름을 지은 이유를 설명할 때는, 위의 슬로건과 함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든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나중에 붙은 ― 이름을 정할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결정하긴 했지만 ― 이유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필자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전기장판 출판사”는 출판사 업무만 진행하고, 기타 문화예술 활동은 ― 블로그, 유튜브 등 SNS 운영, 배우자의 작품활동 등 ― 별도로 수행하기 위해, “사담미디어”를 만들었다. “사담미디어”를 만들고 나서, ’출판사 이름은 대충 지었으면서’라는 ― “사담미디어”는 도메인, 영문명, 영어약자 등 고려해서 만들었다 ―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공들인 시간은 짧아도 전기장판 위에서 지은 “전기장판 출판사”가 훨씬 마음에 들고 정감이 가는 이름이지 않은가?